요제프 스보보다(Josef Svoboda)의 무대 벽을 따라 길게 펼쳐진 구겨진 양피지 형태의 구조물을 중심으로 구성된 미장센이 인물과 사건을 드러내고, 숨기고, 반사하는 역할을 했다. 스보보다가 고안한 개념인 “사이코플라스틱(psychoplastic)” 직물—투사된 이미지를 반사하는 동시에 무대 위 인물이 그 너머로 드러나도록 하는 이중적 속성을 지닌 캔버스—은 산과 구름, 바다로 펼쳐지며 루치아의 광기 속으로의 추락을 감싸는 상상적 장막으로 변했다. 헨닝 브록하우스(Henning Brockhaus)의 연출이 더해진 이번 무대는 새로운 의상과 조명, 그리고 “현실적이라기보다 더 시적이고 몽환적인” 연출로 심리적 복잡성이 더해진 루치아의 세계를 섬세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라벤나의 테아트로 코무날레 알리기에리(Teatro Comunale Alighieri)에서 열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은, 제45회 전통 오페라 시즌 중 예지의 테아트로 페르골레지에서 초연된 프로덕션 투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무대였다. 라벤나 공연은 오페라 시즌(Stagione d’Opera)의 개막작으로 선보였으며, 스보보다의 상징적인 시각 언어가 가장 정교하고 완성도 높게 구현된 무대였다. 투어의 종착점인 이 무대는 본래의 시각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더욱 시적이고 추상적인 해석을 더해 스보보다의 무대 미학과 브록하우스의 연출 철학을 예술적으로 집대성했다.